
데이터, 잘 보여준 줄 알았는데… 전부 착각이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든 ‘데이터를 잘 다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마케팅, 기획, 조직 운영까지, 데이터를 근거로 설명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나도 그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제안서를 만들 때도, 데이터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숫자가 포함된 자료는 곧 신뢰를 의미했고, ‘일을 잘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나는 데이터를 잘 쓰고 있는 걸까? 숫자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걸까? 사실은, 보기 좋게 포장한 적도 많았다. 강조하고 싶은 수치만 부각시키고, 불리한 지표는 의도적으로 제외하기도 했다. 그게 전략이라고 생각했고, 그 방식이 일 잘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월스트리트 저널 인포그래픽 가이드』를 읽고 나서야 태도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시각적으로 꾸밀 것인가보다, 어떻게 왜곡 없이 보여줄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그래프를 예쁘게 만드는 기술서가 아니다. 정보를 어떻게 선택하고 정리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툴보다 기준이 먼저다. 기술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이 책은 그 당연한 원칙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보여주는 순간, 해석은 시작된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정보를 시각화한다는 건 정말 단순히 ‘보여주는 일’일까? 실제로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편집하는 일에 더 가깝다. 어떤 데이터를 쓸지, 어떤 항목을 먼저 배치할지, 어떤 색상을 쓸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해석이 개입된다. 시각화는 의도를 담은 구조다.
책에서는 축의 범위를 조정해 수치를 과장하거나, 색상 대비를 통해 특정 항목을 부각하는 사례를 반복해서 소개한다. 처음엔 흔한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면 그것은 명확한 선택이자 때로는 의도된 조작이다. 더 중요한 건, 의도가 없더라도 ‘중립적인 그래프’는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데이터는 강조되고, 어떤 정보는 빠진다. 빠뜨릴 생각이 없어도,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 결정하는 순간 결과는 편향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객관적으로 보여주자’라는 말보다, ‘지금 어떤 시선을 담아 보여주고 있는가’를 먼저 인식하려고 한다. 중립은 환상일 수 있고, 그 환상이 오히려 더 큰 왜곡을 만든다. 정보를 시각화한다는 건 도구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인지하는 일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배웠다.
설득하고 싶다면, 정확함 위에 서야 한다
정보를 보여주는 일에는 늘 유혹이 따른다. 숫자를 조금만 다르게 배치하면 메시지가 더 강해지고, 불리한 지표를 덜어내면 전체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를 위해 수치를 연출했던 경험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보고서를 쓸 때도 메시지를 먼저 정했고, 숫자는 그 흐름에 맞춰 배치했다. 정확성보다는 전달의 속도와 분위기를 우선시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설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설득은 상대에게 왜곡된 이미지를 심는 일이 아니라,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설득은 반드시 사실 위에서 가능해야 한다.
책에서 제시한 기준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꼭 필요한 정보만 보여줄 것. 수치를 부풀리지 말 것. 강조하되, 왜곡하지 말 것. 모두 알고 있는 원칙처럼 보이지만, 실무에서는 자주 흔들리는 기준이기도 하다. 특히 숫자가 곧 성과로 인식되는 문화 안에서는 더 그렇다.
이 책은 그런 흐름에 제동을 건다. 보기에 좋은 그래프보다, 의미가 잘 전달되는 구조를 먼저 만들라고 말한다. 설득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구성된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읽혀야 한다
시각화라고 하면 대부분 툴을 먼저 떠올린다. 엑셀, 파워 BI, 데이터랩, 노션 차트, 피그마 같은 도구들이 먼저 언급된다. 나도 그랬다. 어떤 툴을 쓰면 더 보기 좋게 만들 수 있을지, 어떤 기능이 더 세련된 결과물을 내는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술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정보를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가?” 시각화는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걸, 이 책은 서두부터 강조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색상에 관한 기준이었다. 색맹을 포함한 다양한 사용자가 정보를 동일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시각적 완성도보다 해석 가능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기 좋은 디자인보다 정확하게 읽히는 구조가 먼저다. 이게 바로 정보 감수성의 핵심이다.
이 기준은 디자이너나 데이터 분석가뿐 아니라, 콘텐츠 기획자, 마케터, 개발자 등 정보를 다루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나 역시 과거에 만든 리포트와 캠페인 자료를 떠올려보면, ‘누가 이걸 어떻게 읽을까’를 먼저 고민한 적은 많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문제없다고 판단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읽히고 해석됐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보 감수성은 특별한 윤리 의식이 아니다. 정보를 다룰 때 그것이 어떻게 오해될 수 있는지를 한 번 더 점검하는 태도다. 이 책은 그것을 기술보다 먼저 익혀야 할 기본값으로 제시한다. 구조보다 도구가 먼저라는 착각을, 이 책은 조용히 바로잡는다.
이 책이 남긴 질문들
『월스트리트 저널 인포그래픽 가이드』는 정보 시각화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에는 정보를 다루는 태도에 대한 책이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보다, 정보를 얼마나 책임 있게 보여줄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어떤 구조를 선택하고, 어떤 데이터를 생략하며, 어떤 색을 칠할 것인지는 모두 의사결정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누군가의 해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 영향에 대해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가, 정보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눈다.
이 책은 어떤 지표를 써야 할지 모를 때보다, ‘이걸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을 때’ 다시 꺼내보게 될 책이다. 숫자를 설득의 수단으로 쓰기보다, 이해를 위한 구조로 설계하고 싶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갖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보고서를 쓰든, 어떤 콘텐츠를 기획하든, 한 가지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시작할 생각이다.
이 정보는 누구에게, 어떻게 읽힐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들
이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과 아래의 질문들을 나눠보면, 단순한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실무 경험, 윤리적 고민, 앞으로의 태도까지 이어지는 깊이 있는 대화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1. 정보 시각화는 정말 ‘중립적’일 수 있을까요?
데이터는 객관적인 숫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데이터를 선택할지, 어떻게 정렬할지, 어떤 색을 입힐지에 따라 정보는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 여러분은 지금까지 만든 자료나 리포트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나요?
•오히려 중립성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편집이 되진 않았나요?
• 내가 만든 시각 자료에 어떤 무의식적인 편향이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2. 설득과 정확성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왔을까요?
보고서나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데이터나 그래프를 구성한 적은 없었을까요?
• 데이터를 ‘이해를 돕기 위해’ 구조를 바꿨던 경험이 있다면, 그건 정확한 전달이었을까요, 설득을 위한 연출이었을까요?
• 반대로, 정확성을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메시지가 흐려졌던 경험도 있었나요?
• 설득과 정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앞으로 어떤 기준을 세우고 싶은가요?
3. 기술보다 감수성이 먼저라는 말에, 여러분은 동의하시나요?
‘감수성’이라는 단어는 자칫 감정적인 의미로만 읽힐 수 있지만, 정보를 정확하게, 공정하게 전달하기 위한 태도로서의 감수성은 매우 실무적인 가치입니다.
• 여러분은 정보를 시각화할 때 누가 이 자료를 읽는가, 누구는 제대로 읽지 못할 수도 있는가를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 색상, 용어, 구조를 구성할 때 특정 독자를 배려하거나 배제한 순간이 있다면 떠올려볼 수 있을까요?
• 앞으로 정보를 다룰 때, 어떤 점을 더 민감하게 인식하고 싶으신가요?
책 정보
월스트리트저널 인포그래픽 가이드 : 알라딘
에드워드 터프티의 이론을 여러 실무 사례로 보강하고 좀 더 현재에 맞게 개정한 후 핵심만 추려내서 읽기에 적당한 분량으로 압축한 듯한 책으로 그래픽 디자인, 통계 그래픽, 통계학, 금융/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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