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워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직을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리더십이 작동하려면 그 아래 단단한 기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커리어는 팀원으로 시작되며, 그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일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입, 실무자, 중간관리자로 일하며 겪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좋은 리더십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팔로워십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리더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던’ 저의 오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담았습니다.
0. 좋은 팔로워십 없이는, 리더십도 팀도 작동하지 않는다
“좋은 리더십이 좋은 팀을 만든다”는 말은 맞다. 그런데 그 말만 믿고 일하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 리더는 분명 잘하고 있는데, 팀이 엉킨다. 회의는 조용하고, 속도는 늦고, 어느새 모든 판단이 리더 한 사람에게 쏠린다. 문제는 리더십이 아니라, 팔로워십이 비어 있었다는 거였다.
우리는 좋은 리더가 되는 법은 배운다. 말하는 법, 방향을 제시하는 법, 책임지는 자세. 하지만 대부분의 커리어는 팀원으로 시작된다. 남이 정한 방향을 따라가고, 누군가의 판단을 실현해내고, 전체 결과의 일부를 맡는 자리. 그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실수 없이 처리하고, 피드백을 잘 정리하고,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 ‘괜찮은 팀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좋은 팀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흐름을 먼저 읽고, 문제를 먼저 짚고, 정리가 필요할 땐 조용히 한 발 앞서는 사람. 좋은 팔로워는 단순히 리더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 글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좋은 팀은 좋은 리더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팔로워십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리더십도 작동하지 않는다.
1. (신입일 때) 일은 시킨 대로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신입 시절엔 그렇게 생각했다. 주어진 일을 정확하게 해내고, 실수 없이 넘기고, 모르는 건 바로 물으면 된다고. ‘질문 잘하는 신입’이 중요하다는 말도 들었고, 나름 성실하게 피드백도 잘 정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일하고는 있는데, 팀과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결과물을 가져가면 “이건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왜 이 방향으로 갔지?” 같은 말이 돌아왔다. 나는 분명 지시받은 대로 했는데, 팀이 원하는 건 그 이상이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좋은 신입은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 사람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진행 중에도 팀과 싱크를 맞추고, 방향이 어긋나기 전에 조율한다. 완성된 뒤에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확인하고 수정한다. 질문도 많지만, 같은 질문은 반복하지 않는다. 한 번 배운 건 다음 판단에 써먹을 줄 안다.
신입은 역량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결국 태도로 기억된다. 배우려는 태도, 빨리 익히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태도, 팀에 더 빠르게 기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게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 팀은 그 사람을 ‘같이 일하는 동료’로 인정한다.
2. (실무자일 때) 내 일만 잘해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실무자가 되면, 팀은 더 이상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속도와 결과는 기본이고, 그 위에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팀의 신뢰가 갈린다. 직책이 없더라도 실무자는 팀 안에서 분명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 영향력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권위가 아니라, 실행력, 맥락 이해, 조율 감각 같은 비공식적인 힘에서 나온다.
돌이켜보면, 내가 실무자 시절 부딪혔던 많은 상황들이 결국 ‘리더는 아니지만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때 내가 얻었던 감각을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➊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실무자의 리더십은 말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걸 먼저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회의에서 아이디어만 말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초안이라도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이거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한 마디가, 팀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다음 스텝을 만든다.
➋ “이건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고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런데 팀은 그 지점에서 자주 멈춘다. 그럴 때 실무자는 팀 안의 번역기 역할을 해야 한다. “이건 이런 맥락이었어요”, “이 방향은 이런 맥락에서 결정된 것 같아요.” 조직의 언어를 팀 안의 언어로 바꾸고, 흐름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➌ “정리할까요?” /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회의가 늘어질 땐 “정리하죠”라고 말하고, 팀 분위기가 눌릴 땐 “한 번 다시 생각해볼까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게 중심이 기울어질 때 균형을 잡는 말과 행동. 실무자는 흐름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➍ “이건 네가 한 번 해보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좋은 실무자는, 자기가 더 빨리 할 수 있어도 후배가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넘길 줄 아는 사람이다. 실수하더라도 경험을 남기는 편이 팀 전체의 속도를 올린다는 걸 아는 사람. 실무자의 리더십은, 성장의 기회를 분배할 줄 아는 성숙함에서 나온다.
➎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는 이 방향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리더에게 무조건 따르지도, 무작정 반대하지도 않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 내용을 명확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 실무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팀의 판단 구조 안에서 파트너십을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무자의 리더십은 조직 안에서 결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다. 리더의 결정을 반복적으로 따르지 않거나, 방향이 정해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견을 내는 태도는 팀의 흐름을 어지럽힌다. 반대로, 리더보다 먼저 방향을 정리하고 판단을 주도하려는 태도 역시 리더의 권한과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팀 내부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실무자는 그 중간 지점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속도는 맞추되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기준은 세우되 최종 판단을 넘어서지 않으며, 리더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지만, 그 자리가 공백이 되지 않도록 움직이는 사람. 회의가 길어질 땐 “정리하죠”라고 방향을 잡고, 후배가 헤맬 땐 “이건 네가 다시 해보자”고 기회를 남기고, 리더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은 “그 말은 이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라고 자연스럽게 보완하는 사람. 이런 실무자가 있을 때, 리더도 본인의 리더십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리더십은 직책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무자의 역할 안에 내장된 리더십이, 팀 전체가 안정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게 결국, 좋은 팀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3. (중간관리자일 때) 리더도 결국, 팔로워였다
중간관리자가 되면 팀을 이끄는 사람이 된다.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는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자주 마주한 역할이 따로 있었다. 바로, 위쪽의 판단을 먼저 이해하고, 그 기대에 맞춰 팀을 움직이는 일. 리더가 되었지만 동시에 대표와 조직 전략의 팔로워가 되어야 했다.
문제는, 그 역할을 처음엔 몰랐다는 것이다. 대표의 요청에 곧바로 “할 수 있다”고 답했고, 그 요청이 왜 나왔는지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했다. 팀은 맥락 없이 일했고, 나는 어느 순간 위와 아래 사이에서 두 방향 모두를 놓친 리더가 되었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좋은 리더는 위쪽 판단을 가장 먼저 이해하는 팔로워이기도 해야 한다.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팀이 움직일 수 있도록 번역하고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몰랐던 시절의 나는 빠르게 움직였지만, 팀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➊ “할 수 있어요”가 팀에겐 아무 도움이 안 됐다
대표가 물었다. “이거 이번 주 안에 가능할까요?” 나는 고민하지 않고 “네,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그게 빠른 판단이고, 리더다운 결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은 그 일이 내려오는 경로도 몰랐고, 왜 우선순위가 바뀌었는지도 듣지 못했다. 결국 그 일은 계획대로 끝나지 못했고, 회고 시간에 팀원은 말했다. “팀장님이 자꾸 일정을 먼저 확정하고 오시면, 저희는 늘 맞추기만 해야 해요.” 대표와의 얼라인을 빠르게 한다는 게 내부를 배제한 독단이 됐다. 조율이 아닌 대리 수용. 그것이 팀에 신뢰를 주지 못했던 이유였다.
➋ 맥락 없이 전달하면, 명령처럼 들린다
나는 대표의 말 하나하나에 예민했다. “이번 분기에는 이쪽 영역을 강화해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이 나오면, 그날 오후 나는 이미 새 기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팀에게는 그 말이 전략이 아닌 지시처럼 전달됐다. 내가 왜 이 일을 제안했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어떤 선택지가 있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팀은 점점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점점 혼자서만 납득한 계획을 만들었다. 대표와의 얼라인은 결국 팀의 동기로 이어져야 한다. 맥락을 통째로 옮겨야 하고, 말이 아닌 의미를 번역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➌ 결정을 빠르게 가져오면, 팀은 말이 없어졌다
한 번은 C-level 회의에서 새로운 업무 요청이 정리됐다. 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팀에 말했다. “이거 다음 주까지 초안 올릴 수 있어요.” 그 말에 이견은 없었고, 회의는 10분도 안 돼서 끝났다. 나는 일이 매끄럽게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한 조용함이 생겼다. 누구도 다른 의견을 꺼내지 않았고, 진행 중인 일에 대한 질문도 사라졌다. 계획은 잘 지켜졌지만, 그 안엔 피드백도 논의도 없었다. 회의는 점점 설명만 남았고, 팀은 점점 정해진 일만 처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중간관리자가 판단을 독점하면, 팀은 주체성을 잃는다. 계획을 빠르게 가져오는 일보다, 팀이 그 계획 안에서 의미를 찾게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중간관리자가 된다는 건, 두 방향을 동시에 이해하는 자리였다. 대표의 전략을 빠르게 읽고 반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전략이 팀에게 납득되고 소화될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작업이 그보다 먼저였다. 나는 자꾸 위쪽의 기대에만 예민했다. 대표의 신뢰를 얻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고, 그 속도가 팀의 납득보다 앞서 있었다.
결국 알게 됐다. 리더십은 결정의 속도가 아니라, 이해의 설계에서 시작된다. 중간관리자의 팔로워십은 위쪽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을 팀이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연결하는 태도다. 이 역할을 놓치는 순간, 리더는 혼자만의 리더가 된다. 그리고 팀은 일하는 집단이 아니라, 따라가는 집단이 된다. 그때 나는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4. 좋은 팀은, 좋은 팔로워십 위에 만들어진다
신입일 때는 ‘잘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은 팀원이라고 믿었다. 실무자가 되었을 땐, ‘내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중간관리자가 된 후엔, ‘리더가 되었다고 팔로워의 자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역할이 바뀔수록, 팔로워십이란 단어의 의미도 점점 달라졌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본질은 같았다. 좋은 팔로워십이란 결국, 팀이 잘 일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힘이었다. 흐름이 끊기지 않게 채우고, 판단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하게 정리하고, 의미 없이 따라가는 일을 줄이고,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일. 리더십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리더를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팀은 무너진다. 좋은 팀은 뛰어난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방향을 이해하고 실현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좋은 팀을 만드는 기준을 조금 다르게 본다. 그 팀에 좋은 팔로워가 있는가? 그 사람이 있는 팀은, 무너지지 않는다. 리더가 실수해도 다시 세울 수 있고, 방향이 바뀌어도 유연하게 따라간다. 좋은 팀은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팔로워십이 움직이고 있는 팀이다.
이번 글에서는 ‘팔로워십’이라는 주제에 집중했습니다. 팀을 팀답게 만드는 힘은 단지 리더 한 사람의 리더십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흐름을 정리하고, 판단을 뒷받침하며, 실행을 책임지는 사람들. 이들의 역할이 단단할 때, 비로소 리더십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팔로워십만으로는 팀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습니다. 좋은 팔로워십이 빛나려면, 그 위에 설 수 있는 리더십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리더로 일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그 안에서 다시 정리하게 된 리더십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떤 리더십이 팀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어떤 리더십이 팀을 다시 움직이게 했는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또 한 편의 기록을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