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정글 7기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다. 지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많이 참고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기수에 지원하는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합격 후기를 남긴다.
우선, 내 소개부터
나는 비전공자다. 게다가 뼛속까지 문과생이다. IT 업계에서 7년간 마케팅, CX, PR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다. 크래프톤 정글에 지원하기 전까지 코딩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아,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컴퓨터 수업으로 HTML을 배웠던 적은 있다. 그리고 컴퓨터를 좋아한다. 잘은 모르지만 SW 기술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에 컴퓨터 공학이라는 분야도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을지도 모르겠다. IT 업계에 종사하면서 개발자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고,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지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게 내가 가진 이력의 전부다.
취미가 코딩이고 싶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표는 개발자가 아니다. 운이 좋아 적성에도 잘 맞고 내가 잘하는 것이라서 개발자가 되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4년을 공부하는데 내가 5개월 만에 따라잡을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기술을 이해하는 비개발자 직군으로 커리어를 확장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또 하나의 내적 동기는 바로 호기심이다. 순수하게 SW 개발이라는 분야가 궁금하다.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코딩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내 취미가 '주말에 도서관 가서 코딩하기'였으면 좋겠다. 지적 허영심이라고 해도 좋다. 상상만 해도 내 모습이 너무 멋지다.
크래프톤 정글을 선택한 이유
① 퇴사 이후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정과 딱 맞았다.
② 5개월 합숙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③함께 공부할 지원자들의 수준이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④ 스킬 위주의 커리큘럼이 아니라 전산학 기초를 다룬다.
지원서 작성하기
크래프톤 정글 첫 번째 관문은 지원서다. 지원서는 총 6가지 항목을 작성해야 한다. 나는 자기소개 영상 촬영까지 총 3-4일 정도 걸렸다. 직업적인 특성상 퇴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 2-3일에 걸쳐 퇴고를 했다. 순수 작성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쭉 작성했고, 글자 수에 맞게, 임팩트 있게 축약하는 데 시간을 썼다.
지원서 항목
① 지원 동기
②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성취 경험
③ 기억에 남는 팀워크 경험
④ 지원자를 반드시 뽑아야 하는 이유
⑤ STEM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험
⑥ 자기소개 1분 영상
지원서 작성 팁 💡
두괄식으로 작성할 것. 첫 문장에서 임팩트를 주지 못하면 다음 문장은 읽지 않는다.
지원 동기는 다소 막연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열망을 끄집어내 솔직하게 작성했다. 성취 경험과 팀워크 경험은 그동안의 업무 경험을 최대한 살려 작성했다. 다행인 건 내가 일을 사랑하는 워커홀릭이었고, 일을 통한 성장에 진심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업무 경험 속에서 살려 쓸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난관은 5번이었다. 이공계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직업적 특성상 말랑한 우뇌가 더 필요할 때가 많았다.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서울대학교 이광근 교수님의 '컴퓨터 과학이 여는 세계' 강의였다. 몇 개월 전에 호기심에 시청했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강의 내용을 다듬어 책으로도 출간됐으니 휴식 삼아 한번 읽어봐도 좋다.
자기소개 영상 촬영하기
영상 촬영 팁 💡
연습은 하되 절대 외우지 말 것. 스크립트를 준비할 예정이라면 구구절절한 문어체보다는 호흡이 짧은 구어체를 활용해 준비하라. 평소 말하는 습관을 녹여 말해야 스피치가 자연스럽다.
영상은 편집하고 싶지 않아서 한 번에 찍기로 했다. 전체 촬영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렸다. 내 생각에 영상 제출은 지원자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평가자들이 내가 얼마나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말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명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지도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용을 외우지 않도록 주의했다. 경험상 내용을 외우려고 하면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
입학시험 준비 하기
입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HTML, CSS, JavaScript, jQuery, Ajax, Python, MongoDB, Flask, AWS를 공부해야 한다. 나는 스파르타 코딩 클럽의 '[왕초보] 웹개발 종합반'과 '웹개발이 처음이어도 쉽게 배우는 GPT 웹개발' 강의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습 자료 커리큘럼은 시험 내용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찾아 공부해야 했다. 나는 AWS로 배포하는 부분은 거의 학습하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하나라도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을 해서 공부했던 것 같다. 회사 일과 병행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공부 자체는 무척 재미있었다. (사실 한 번 울기도 했다.)
입학 시험 치르기
입학 시험 자료에서 언급된 대로 예제에서 시험 문제가 나왔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코드를 작성했다. 내 실력으로 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속상했지만, 합격이 우선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먼저 머릿속으로 기능적 요구 사항을 정리하고, 코드 작성 순서를 계획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고, 시험을 치르면서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때로는 잘 돌아가던 코드가 갑자기 오류를 일으키기도 했다. 모르는 부분은 틈틈이 학습 자료를 참고했고, 배포 부분은 과감히 포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기억이 좀 흐릿하다. 너무 몰입해서 시험을 치르다 보니, 세세한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즐긴다고 즐겼는데 그래도 긴장했나 보다.
인터뷰 준비하기
입학 시험을 잘 치렀다면 합격 통보를 받게 될 것이다. 워낙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 합격했다. 합격하면 인터뷰 일정을 정하는 이메일을 받게 된다. 나는 ChatGPT를 활용해 코드 리뷰도 받고, 예상 기술 질문도 준비해 봤다. 코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기술 질문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원서를 바탕으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해 이 부분도 중점적으로 준비했다.
인터뷰 치르기
인터뷰 시작 5분 전에 화상 미팅 링크에 접속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든 생각은 '합격해도 큰일이다'였다. 다대다 면접이어서 한 사람당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였다. 함께 인터뷰를 본 사람 중 한 명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미 2-3년 차 개발자였다. 나보다 훨씬 경험도 많고 실력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경쟁한다는 사실에 불안함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합격을 위해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답변했다.
인터뷰 질문
① 왜 크래프톤 정글에 지원했는지?
② 왜 개발자가 되려고 하는지? (퇴사하고 참여할 만큼인지?)
③ 만약 크래프톤 정글에서 떨어지면 이후 행보는?
④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은?
⑤ 기술 질문 1가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메모도 남기지 못했다...)
⑥ 앞서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질문들은 준비한 대로 무난하게 답변했지만, 기술 질문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답변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이 솔직함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기술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을 때, 개발자가 목표는 아니라는 답변을 했을 때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직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합격했다. 나의 솔직함이 먹혔을까? 고작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면접관들이 나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봤을까? 아니면 퇴사까지 하면서 도전하는 용기를 높이 평가해 주셨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기술적인 지식보다는 학습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또는 비전공자의 새로운 시각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면접은 단순히 지식을 테스트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원자의 전체적인 잠재력과 태도를 평가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내 경우, 기술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면에서 그들이 찾는 무언가를 보여줬나 보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은, 항상 정직하고 열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최종 합격! 인생의 절반은 기세다
"인생의 절반은 기세다"라는 말이 있다. 최초 지원서를 내는 순간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나는 이 기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나 탈락 시의 패배감보다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서 느낀 뇌의 짜릿함, 몰입의 경험, 그리고 나보다 뛰어난 실력자들과 동등하게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집중했다. 회사 밖 활동을 하니 일탈하는 것 같아 정말 즐거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두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즐기셨으면 좋겠다. 기세를 잃지 마세요!
부끄러운 동료는 되지 말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나보다 실력적으로 월등히 앞선 동료들을 열심히 따라잡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이끌어줄 수 있는 동료는 되지 못하더라도, 절실한 마음으로 크래프톤 정글에 지원한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곳에서 꼴등일까 조바심내기보다는,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자. 나는 경쟁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고, 몰입하는 경험 자체를 즐기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다. 동료들보다 뒤처지는 건 당연하다. 출발선이 다름을 인정하자.
입소까지 남은 시간은 퇴사 준비와 파이썬, C 공부를 하며 보낼 예정이다. 회사 일과 병행하며 공부해야 하므로 얼마나 몰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가능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최선을 다해야겠다.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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